※ 스포가 있는 후기이니 읽기 전에 참고 부탁 드립니다.
지난 주말, 시어머님께 아이를 맡기고 남편과 함께 베테랑2를 보고 왔다. 남편은 영화든 드라마든 보면서 성적 평가를 많이 하는 편이다. 관객수, 시청률, 평점 같은 것들 말이다. 이번에 베테랑2를 볼 때도 개봉하자마자 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기 전에 관람객들의 평점을 참고부터 하고 보러 갔다. 우리 부부가 베테랑2를 예매해서 보러가던 날에 이 영화에 대한 평점은 네이버 기준으로 6점대로 평이 많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은 베테랑1을 굉장히 재밌게 봤기 때문에 평점이 많이 저조해도 그래도 기대하는 부분이 있었던 모양이다. 반대로 나는, 베테랑1을 극장에서 보긴 봤는데 그렇게 재미있게 보진 않았다. 왜 천만명이 넘는 관객이 들었는지 잘 모르겠을 정도였다. 악역이 너무 나쁜 놈이라서 보면서 속에서 천불이 났고, 마지막에 악역을 마침내 잡아 권선징악을 실현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속이 안 시원해서 보고 나서도 기분이 좋지 않았던 영화였다. 그랬기 때문에 베테랑2에 대한 기대도 크게 없었다. 남편이 보고 싶어하니깐 그냥 따라가서 같이 본 것 뿐이었다.
그런데 관람 후에 반응은 남편과 내가 반대였다. 나는 이번에 상당히 재미있게 봤고, 남편은 나와 반대되는 반응이었다. 나는 영화를 보고 나서 '생각보다 굉장히 재미있는데 평점이 왜 이렇게 낮지?' 하고 생각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다. 내 옆에 앉아서 영화관람을 하던 커플도 영화 끝나고 나오면서 내 생각과 똑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가는 걸 내 귀로 똑똑히 들었다. 같은 영화를 보면서도 이렇게 반응이 다르니, 그래서 누구나 인정하는 좋은 영화를 만들기가 힘든 모양이다.
내가 이 영화가 재미있었던 이유 : 어쩌면 정해인 때문일지도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내 기억에 계속 남는 건, 황정민도, 액션도, 통쾌함도 아닌, 오직 정해인 뿐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기존에 정해인 팬이었던 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동안 정해인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생각해 보면 지금껏 정해인이 출연한 작품을 제대로 본 적도 한 번도 없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라는 드라마가 상당히 인기가 많았는데 그 드라마도 아직까지 한 편도 제대로 본 게 없고, 정해인이 출연한 'D.P.'라는 넷플릭스 시리즈도 상당히 인기가 많았다는 건 알지만 내가 넷플릭스 회원이 아니라서 안 봤다. 내가 정해인을 가장 자세하고, 열심히, 또 길게 본 건 영화 '서울의 봄'을 극장에서 봤을 때(정해인이 나오는지도 몰랐음), 그리고 푸라닭 치킨 광고 뿐이다.
즉, 정해인에 대한 어떤 특별한 감정이나 팬심 없이 이번 베테랑2를 본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고 나서 정해인 밖에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는 건, 그만큼 정해인이라는 배우가 만인의 연인까지는 아니더라도 나같은 어떤 특정한 누군가에게는 어필할만한 매력을 이번 영화에서 충분히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내가 영화가 재밌었다고 하면서 오직 정해인 이야기만 하니깐, 남편이 만일 정해인이 이 영화에 나오지 않았다면 그래도 이 영화를 재밌었다고 말할 수 있었겠냐는 이야기를 했다. 즉, 정해인 역할을 정해인이 아니라 다른 배우가 했다고 해도 재미있게 봤었겠냐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생각을 해봤는데, 어쩌면 정해인이 아니었다면 영화가 재밌었다고 느끼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스토리나 액션에 대한 만족이 아닌, 특정 배우에 대한 만족스러운 감정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의 이번 영화에 대한 후기를 찾아보면 정해인이 빌런 치고는 좀 약했다는 평가도 꽤 있긴 했는데, 나의 경우에는 개인적인 취향으로 이 영화는 정해인이 살렸다고 생각한다. 그냥 잘생기고 멋진 다른 어느 누가 이 역할을 했어도 똑같은 느낌이 들었을 것 같진 않고, 정해인이 가진 순수하고 깨끗한 이미지와 그에 상반되는 역할이 주는 갭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중에도 비슷하게 느낀 사람들이 있긴 한 것 같다. 특히 여성분들이 말이다. 네이버 영화 평점에서 이 영화에 대해 남성관객들보다 여성관객들이 평점을 더 높게 준 것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해봤다.
하지만 아무리 정해인이 좋았니 어쨌니 해도 영화에 대한 아쉬움은 나 역시 가지고 있다. 영화 초중반에는 정해인이 그래도 범죄자들만 처리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서 악역이긴 하지만 본인 나름으로는 정의를 추구하는 역할인건가 싶었는데, 영화 중후반부에 갈수록 그런 인물이 아니라 이 사람 저 사람 가리지 않는, 이유도 없는 그냥 원래 나쁜 사람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영화를 보면서 영화 속 정해인을 약간은 응원하던 나의 마음이 영화 중후반부로 갈수록 오갈데 없이 혼란해진 상태에서 영화가 그냥 끝이 난다. 영화 처음부터 차라리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영화가 끝나도 별다른 찜찜함은 없었을텐데, 그래도 한 줄기 정의를 위해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역할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는 걸 알고 나니깐 현실적이기도 하면서 허망하기도 하고, 뭐 그런 채로 영화가 끝이 났다. 영화를 본 다음 날, 이 영화에 대한 기억이나 감흥이 싹 사라진 걸 보면 실제로 내가 그렇게 재미있게 보진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현재 시점 네이버 평점처럼 6점대까지의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극장에서 봤던 영화 중에는 그래도 제일 재미있게 봤다(올해 봤던 영화 : 파묘, 범죄도시4, 빅토리). 이번 베테랑2 후기를 찾아보면 영화를 보고 화를 내시던 분들도 많던데, 그래도 나처럼 적당하게 만족하면서 재미있게 본 사람도 있다고 알리고 싶어서 후기를 올려 보았다. 오늘 기준으로 관객수를 찾아보니 570만명은 됐는데, 아마도 700만명까지는 되지 않을까 싶다. 이번 영화를 보고 나서 정해인에 대해 한 번도 검색을 해본 적이 없던 내가 검색을 해보기 시작했다ㅋㅋ. 내가 봤을 때는 액션 연기도 괜찮게 하던데, 개인적으로 액션이 좋은 영화를 좋아해서 다음에 이번 영화와 비슷하지만 훨씬 더 좋은 작품에서 액션연기까지 같이 또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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