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 아이가 35개월이 될 때까지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가정보육을 했다. 이 기간 동안 문화센터에서 만나는 엄마들이나 아이의 동네 친구 엄마들이 어린이집 방학 기간이 되면 전전긍긍하면서 어쩔 줄을 몰라하는 모습들을 볼 때마다 엄마들이 참 별 것도 아닌 일에 엄살을 떤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 아이의 첫 어린이집 방학을 맞이하면서 그 때 그 엄마들이 왜 그렇게 뭘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끙끙 앓았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래서 내 일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있는 모양이다.
심심하게 집에 있는 것을 못 견디기 시작한 아기
인스타그램에서 돌아다니는 영상 중에 삐뽀삐뽀 하정훈 소아청소년과 의사 선생님의 강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 분의 말씀에 따르면, 요즘 부모들은 쉬는 날만 되면 아이를 데리고 여기저기 신기하고 재미있는 곳에 계속 놀러다니면서 키우기 때문에, 집에서 혼자 심심하게 있는 그 시간을 아이들이 조금도 견디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다고 하셨다. 그게 왜 문제냐면, 우선은 그렇게 아이가 쉬는 날마다 어디 놀러다니는 것에 익숙해지게 되면 쉬는 날에도 여기저기 아이를 데리고 다니느라 부모가 더 힘들어지게 되고, 부모가 힘들어지게 되면 육아 자체가 힘든 것이 되고(하정훈 선생님은 육아를 힘들게 하는 것을 매우 위험한 것으로 보시고 육아는 쉽게 해야한다고 주장하시는 분임), 그런 요소들이 모이고 쌓이고 퍼져서 육아란 힘들고 희생만 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육아를 기피하는 사회적 현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 더 나아가자면, 이건 하정훈 선생님이 한 말만 본 건 아니고 다른 육아 전문가 영상에서 본 것인데, 아이들이 심심하고 지루한 시간도 가지면서 그 시간에 뭘 하고 보낼지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창의력과 같은 생각하는 능력이 발달하고 차분한 시간을 잘 보내는 연습을 통해 인내심 같은 것도 키워지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쉬는 날 항상 재미있는 곳을 가면서 뭔가 눈에 보이고 당장 흥미를 유발하는 자극 같은 것에 익숙해지다 보니 그런 자극이 잠시라도 없으면 그걸 견디지 못하게 되면서 참을성도 없어지고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면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게 마냥 남의 일인 줄 알았는데, 이번에 우리 아이가 그런 모습을 보였다.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 주말이면 집에서 뒹굴뒹굴 하다가 동네 마실이나 다니곤 했었던 아이인데, 어린이집 방학이 시작되면서 어린이집을 안 가도 된다는 사실을 인지한 후 아침에 눈 뜨자마자 나에게 한 말이 '오늘 어디 갈거야?'라는 말이었다. 그러면서 '어디 재미있는 곳에 가고 싶어'라는 말을 계속 반복해서 하고, 아침을 먹고 나자마자 '빨리 나가자'라는 말을 계속 반복했다. 그래서 내가 '어디 갈 데가 없는데'라고 말했더니 애가 재밌는 곳에 가고 싶다면서 갑자기 우는 것 아닌가? 아직 39개월, 이제 4세, 네 살인 우리 아이가 그 동안 이런 적이 없어서 나는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사실 그 동안 항상 생각했던 건 다른 젊은 아빠 엄마들에 비해 40대 중반을 훌쩍 넘어선 우리 부부는 기력이 좀 딸려서 남들에 비해 그렇게 부지런히 아이를 데리고 다니지 못했다는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늘 새로운 곳을 가기 보다는 갔던 곳을 반복해서 가는 면도 좀 있어서 그 부분도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 아이는 데리고 가는 곳마다 나름대로 즐거워했고, 그밖에 나와 그냥 집에서 책이나 읽고 이러는 시간 또한 그럭저럭 잘 보내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번 방학 기간에 유독 심심한 것을 못 견뎌하는 부분이 눈에 띄게 나타나서 좀 힘들긴 하다. 아마도 그 원인으로는 안 다니던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매일 많은 친구들과 북적북적 지내고, 또 어린이집에서 재미있는 다양한 활동을 매일 하면서 익숙해지다 보니 어린이집을 안 가면서 별 거 없이 지내는 방학을 평소보다 더 심심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급하게 방문한 청리단길 카페, 꽃차당
아무튼 아이가 울기까지 하니깐 안쓰럽기도 하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부랴부랴 준비를 해서 아이와 함께 집을 나섰다. 원래는 홍대나 종로, 뭐 이런 번화가쪽으로 지하철을 같이 타고 가 보려고 했는데 지하철로 이동하는 시간이 한 시간 가까이 걸려서 아이가 가는 도중에 이미 지칠 것 같고 나도 덩달아 지칠 것 같았다. 게다가 한 달 전쯤 평일에 방문했을 때 사람이 거의 없어서 이런 식으로 운영이 가능할까 싶었던 홍대 시나모롤 카페도 지금 시기에는 예약하려 보니 낮 시간에는 예약이 꽉 차 있었다. 산리오 러버스 클럽 카페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방학 시즌이 되면서 엄마들이 예약을 많이 한 모양이다. 각종 어린이 박물관도 마찬가지이다. 서울에 위치한 좀 유명하다 싶은 어린이 박물관은 거의 모두 8월 초중순까지 예약이 꽉 차 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나와도 갈 곳이 없었던 것이다. 어린이집 방학을 내가 너무 쉽고 만만하게 봤다는 것에 대해 이번에 반성을 했고, 엄마들이 방학 때 뭐하냐고 낑낑대는 걸 안 좋게 봤던 것도 깊이 반성했다.
** 어린이집 방학을 대비하기 위한 준비로 방학기간을 미리 알아두어서 최소한 그보다 한달 전쯤부터 국립민속박물관 어린이박물관, 서울공예박물관 어린이박물관, 전쟁기념관 어린이박물관 같은 곳을 미리 예매해 두는 것이 좋다. **
어쨌거나 이번에는 그 모든 박물관 같은 것을 미리 예약하는 것은 못했기 때문에, 당장 급한대로 아이에게 저번에 가봤던 예쁜 카페에 또 가겠냐고 물어봤더니 다행히 아이가 흔쾌히 좋다고 했다. 우리 아이는 이미 밖에 나와서 콧바람을 쐰 것만으로도 벌써 기분이 좋아진 상태였다. 철저한 집순이인 나와는 좀 다른 성향의 아이인 모양이다. 그렇게 해서 방문한 것이 부평구청역 청리단길에 위치한 카페 '꽃차당'이다.
꽃차당
인천 부평구 길주로585번길 7-15 1층
이 곳은 저번에 아이와 함께 방문했었는데, 자그마한 카페지만 예쁜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었고 은근히 야외 테라스까지 즐길 수 있어서 또 한 번 방문하고 싶었던 곳이었다. 다만 저번에는 메뉴 주문에 실패했는데, 이번에는 저번의 실패를 교훈 삼아 절제되면서도 만족스러운 메뉴로 주문을 해 보았다.
원래는 카페라떼나 카페모카처럼 그냥 커피를 주문하고 싶었는데, 아이에게 예쁜 꽃차를 따라서 마시는 모습도 보여주고 싶어서 일부러 메리골드차로 주문해 보았다.
나는 차맛은 잘 모르기 때문에 정확히 평가할 수는 없지만 예쁜 비주얼과 달리 맛은 좀 싱거운 느낌이긴 했다. 하지만 내가 차를 즐기려는 것보다는 아이에게 차분하게 차를 따라서 마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에 그거대로 만족한다.
이 카페의 장점은 야외 테라스에 그네의자가 있다는 점이다.
저번에 방문했을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평일 오전에 방문한 것이기 때문에 실내에서 시원하게 디저트를 먹고 난 후에 느긋하게 밖에 나와서 이 그네의자를 독점할 수 있었다. 요즘같은 여름철에는 당장 야외에서 있기엔 너무 덥지만 실내에서 에어컨 바람을 충분히 쐬다가 나오면 야외에서도 꽤 오랜 시간 있을만 하다.
이렇게 우리 아이 어린이집 여름방학 1일차는 카페 투어로 시작했다. 미리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 있다가 아이가 갑자기 울고 불고 하는 바람에 당황해서 뭔가 어영부영 카페 한 군데 다녀오고 집 앞에서 비눗방울 놀이를 한 게 전부였다. 남은 방학기간 동안은 어떻게 할지 좀 더 구체적인 계획을 짜서 아이와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미리 아이에게 충분히 이야기해서 하루 이틀 쯤은 아무데도 나가지 않고 집에서 소소하게 책 보고 집앞을 산책하며 아이가 잔잔한 시간을 보내게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쉬는 날 집에 있으면서도 그럭저럭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익숙해지도록 말이다.
[관련글]
'40대에 육아 시작 > 아이 데리고 가본 곳'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서구 서울식물원 한여름에 방문해 본 후기 (0) | 2024.07.31 |
---|---|
아기랑 카페 투어 어린이집 방학 2일차, 연남동 청수당공명 (0) | 2024.07.31 |
뽀로로파크 월미도점 후기(나도 티몬 환불 피해자 반값 할인 티켓 무효) (0) | 2024.07.25 |
세 돌 37개월 아기랑 홍대 시나모롤 스위트 카페 후기 (0) | 2024.06.05 |
세 돌 아기 데리고 간 곳 후기(서울대공원 동물원, 뽀로로파크 영등포점, 한강공원, 서해랑 케이블카) (0) | 2024.06.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