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큰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남편과 함께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우리 부부는 운이 좋게도 코로나라는 것이 세상에 나타나기 딱 두 달 전에 결혼했고, 또 남편과 나 둘 다 40대가 넘어 늦게 한 결혼이라서, 우리의 결혼식은 양가의 많은 친척분들이 거의 모두 참석하여 진심으로 축하해 주셨다. 그러나 우리의 결혼식 직후에 코로나가 나타나고, 또 우리는 임신과 출산, 육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래 저래 친척 경조사에 참석을 할 수가 없었다. 결혼식과 장례식 모두 인원 제한이 있던 시기이기도 했고, 또 사람 많은 곳에 갔다가 혹시나 코로나에 걸리면 아기를 키우는데 상당히 힘든 상황이 올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올해부로 여러가지 제약이 풀리기도 했고, 우리 가족 모두 코로나를 한 번씩 걸렸기 때문에 내심 두려움이 좀 줄어든 상태에서 나의 친척쪽에 부고 소식이 들려오면서 처음으로 남편과 우리 쪽 친척 경조사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장례식이라는 너무 슬픈 자리이지만, 그래도 결혼 후 처음 내 쪽 친척들을 만나는 자리이기 때문에 이 더운 날 남편은 정장에 검은 넥타이까지 갖춰 입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나 역시도 결혼식 후 처음 친척들을 만나는 것이라서 옷차림에도 더욱 신경을 썼다. 장례식장에 화장을 하고 가야 하는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어서 엄청 검색도 해보고, 색조 화장은 거의 하지 않았지만 피부 화장은 제대로 잘하고 갔다. 뭐.. 막상 가보니깐 우리 부부 빼고는 다 그냥 꼬질하게 와 있고 남자분들도 넥타이 한 사람들도 거의 없고, 여자분들도 다 그냥 평상복 입고 와서 우리만 너무 정장식으로 잘 갖춰 입고 오바했나 싶긴 했는데..
어쨌거나 그렇게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친척분들께 위로의 말씀과 조의금을 건낸 후 우리 부모님과 다른 친척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아무래도 결혼식 후 처음 우리 친척들을 만난 자리라서 남편에게 관심도 많이 가져주시고 질문도 해주시고 했다. 우리 엄마는... 오랜 시간 사위 없이 이런 경조사에 참여하다가 처음으로 사위와 함께 오니깐 든든해하는 것 같았다.
나도 이번에 장례식장에 가면서, 처음으로 불편하지 않은 마음으로 장례식에 다녀왔다. 나는 40대 들어서야 결혼을 했기 때문에, 그 전까지는 친척들이 모이는 자리에 가면 누가 결혼을 하던 누가 돌아가셨던 간에 그 자리의 주인공은 언제나 나였다. '언제 시집갈 것이냐', '왜 못가고 있는 것이냐', '눈을 낮춰라', '니 나이면 50살을 만나야 한다' 등의 잔소리는 기본이고, 40대에 가까워져 갈 때쯤엔 아예 잔소리도 없이 약간의 동정어린 눈빛을 담은 위로나 격려도 많았는데, '괜찮아 요새는 시집 안 가면 더 잘 살더라'(그들도 나를 거의 포기) 종류의 이야기 혹은 볼트모트처럼 아예 결혼에 관한 언급을 눈에는 가득 담고 있으면서도 차마 하지 못하고 다른 얘기만 빙빙 돌리거나 하는 식이었다. 그런 자리에 다녀오면 부모님(특히 엄마)은 엄청 열받아 하고 속상해 하시고(특히 결혼식 다녀 온 경우) 나는 늘 죄인처럼 죄송한 마음과 컴플렉스가 한 가득이었는데, 처음으로 그런 불편한 두려움 없이 친척들의 모임에 다녀온 것이다.
우리 남편도 나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남편 역시 나처럼 결혼 전에는 친척 경조사에 어느 순간 절대 참여하지 않았다가 지금은 마음이 바뀌었단다. 결혼하기 전에는 경조사에 절대 가기 싫었는데 지금은 친척 모임이나 친척 행사 있으면 가고 싶다고.. 생각해 보면, 나의 남편은 만일에 직업이나 학력만 여자들이 선호하는 쪽이었다면 그렇게 마흔 넘어까지 결혼을 못하고 있진 않았을 것 같다. 사람들은 결혼할 나이가 되면 보는 조건이 나름대로 까다롭게 있어서 남자는 학력이나 직업, 경제력까지(어쩌다 보니 이 사회가 이렇게 됐나 싶다만 남자들은 준비할 것이 많아 정말 힘들 듯..) 어느 정도는 있어야 결혼이 잘 되는 것 같다. 우리 남편은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고 자기 일을 성실히 하는 착실한 남자였으나 위에서 말한 조건에 다 맞진 않았고 약간의 빚도 있었다. 그래도 그 덕분에.. 내가 우리 남편과 결혼할 수 있었으니 다행이랄까..
남편은 그렇다 치고 그러면 나는 왜 그 나이까지 결혼을 못하고 있었냐면.. 20대 때는 내가 좋아하는 남자들의 눈에는 내가 그렇게 막 결혼을 결심하게 할만큼 충분히 매력적인 상대가 못 되었던 것 같고, 선 보러 나가서 만난 남자들은 아무래도 어른들이 해 주시는 거라서 경제력이나 직업 같은 건 보장되어 있었는데 그 때는 내가 막 멋있는 사람, 혹은 보여지는 외면을 놓지 못하던 시절이라 그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의 마인드로 그 시절을 돌아보면, 내가 좋아했던 남자들은 그냥 질이 좋지 않은 겉만 번지르르한 남자들이었고(그런 남자들도 자기 짝 만나서 결혼해서 애 낳고 잘 사니깐.. 결국 내가 그들을 휘어잡을 매력이 부족했던 것으로 결론이 남), 내가 선자리에서 거절한 남자들 중에는 지금의 눈으로 보면 괜찮은 분들도 많았다. 결혼하고 보니 보이는 외모 같은 건 그렇게 중요하진 않은 것 같고, 심성이 좋고 많은 돈 못 벌어도 성실하고 자기가 하는 일이 딱 있고, 그리고 미리 파악하긴 힘들긴 한데 집안 가족이나 부모님 중에 나중에 해가 될만한 이상한 사람이 없다면 충분히 괜찮은 것 같다(사실 이 정도도 되게 찾기 힘든 조건의 사람임).
이번에 장례식장에 다녀 오면서 다시 한 번 남편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내가 평소에도 남편에게 나를 구제해 주어서 고맙다고 말을 많이 했는데(나의 구세주라고), 이번에 장례식장에 가서 아빠와 엄마가 친척들에게 사위를 소개하며 든든해 하고 흐뭇해하는 걸 보니 그 고마움이 더 크게 느껴졌다. 이번에 장례식장에 다녀오면서 남편에게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돌아가신 큰아버지는 나와 가깝게 지내진 않았지만, 나를 보면 항상 결혼 언제 하냐고 정말 너무 심하게 많이 기나긴 잔소리를 하셨었던 분이다(내가 서러워서 혼자 울었던 적도 있었을 정도의 잔소리도 많이 하셨다). 내 결혼식에서 잠시 인사한 거 말고는 따로 인사도 못 드리고 이렇게 장례식장에서야 뵙게 되었네.. 그 듣기 싫었던 잔소리도 지금와서는 큰아버지와의 나름의 추억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덕분에 좋은 배우자를 만났다고 생각한다. 부디 좋은 곳에서 편하게 지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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