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개월 네 살 아기 영상 미디어 노출 상태
오랜만에 육아 관련 글을 올려 본다. 이제 네 살이 된 딸이 최근에 로보카폴리에 깊이 빠지면서 미디어 노출에 대한 걱정과 고민이 이어지고 있다. 미디어노출에 대한 해결책이나 정답 같은 건 없고, 그동안 내가 영상 노출 관련해서 해왔던 것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한 개인적인 계획 같은 것들 위주로 정리하려 한다.
36개월까지 지켜온 미디어 시청 금지
나와 남편은 아기가 태어나기 전부터 티비를 보여줄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출산 전에 티비를 집에서 없앴다. 티비 없이 어떻게 살지 싶었는데 그래도 어떻게 살아지기는 했다. 솔직히 어른들은 핸드폰이 있기 때문에 티비가 없다고 크게 불편하지도 않았다. 단점이라면.. 내가 핸드폰 중독이 심해졌다는 것 정도..
그래도 아기 키우면서 워낙 유난을 떠는 스타일이라서 처음부터 영상을 안 보여줄 생각이었기 때문에, 동영상을 못 보여줘서 육아가 불편하고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게 보여주다가 끊으면 많이 불편할 거 같은데, 애초에 보여줄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불편함을 못 느낀 것이다. 영상 대신에 멜론 음원사이트에서 검색하면 나오는 라인프렌즈, 주니토니 키즈동화 같은 것은 엄청 많이 들려주었다. 이것도 미디어처럼 아이 정서에 안 좋은지 검색을 좀 해봤는데 속 시원한 답은 따로 발견하지 못했고, 예전에 들었던 온라인 실시간 육아교육 시간에 강사분께 질문을 했었는데 동화를 들려주는 것은 영상처럼 나쁘지 않지만 역시나 하루종일 들려주면 안 되고 중간에 휴식의 시간을 두면 좋을 것 같다는 답변을 들었다.
미디어를 안 보여주어야겠다는 생각을 더 강하게 하게 된 계기도 있는데, 두 돌 되기 전쯤, 명절을 앞두고 아이에게 유튜브에서 어린이들이 세배 영상을 찍은 것이 올라와 있길래 세배하는 방법을 알려주려고 영상을 보여준 적이 있다. 그런데 우리 아이가 그 영상을 끄지 못하게 하고 강한 집착을 보이며 울고 불고 달래느라 난리도 아니었다. 그 때 '이래서 영상을 보여주지 말라는 거구나' 하고 생각하여 아이에게 정식으로 영상을 보여주어서는 안 되겠다고 더 굳게 다짐하게 되었다. 그 후로 세 돌이 넘어서까지도, 진짜 어쩌다가 심심해할 때면 아이를 찍은 영상 정도는 폰으로 보여준 적은 있지만 일시적으로 잠깐씩만 보여주는 정도였다. 차로 어디 장거를 이동할 때도 음원으로 동화나 노래를 틀어주거나, 장난감 혹은 스티커북을 이용하고, 식당에 가서는 아이가 워낙 외식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미 먹는 것에 집중하고 있어서 굳이 영상을 틀어줘야 한다는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한 채 지내왔다.
세 돌이 지난 후에는 약간 느슨해진 미디어 노출
35개월부터 아이는 가정보육을 마치고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어린이집에서는 점심시간에 아이들에게 배식할 때, 그리고 하원하느라 바쁜 시간에 잠깐씩 영상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보여주는 영상은 '엄마까투리'인데, 그렇게 자극적이지 않아서인가 우리 아이의 경우에는 그냥 어린이집에서 볼 때만 잠깐씩 보고 집에서 딱히 까투리 영상을 보고 싶다고 하거나 까투리 캐릭터에 큰 관심을 보이거나 하진 않았다.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시점부터 시작해서는 아이의 미디어를 조금씩 허용해 주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는 2주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러 우리와 함께 가는데(시댁 가까움), 거기서는 티비를 한 번씩 보도록 허용해 주기로 한 것이다. 그 동안 우리가 예민하게 애를 키운 탓에 시댁에 가면 할아버지, 할머니도 덩달아 티비를 끄고 못보고 계셨는데 이제는 그냥 켜놓고 계시라고 한다. 우리 아이는 티비에 나오는 모든 프로그램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어린이용 프로그램에만 관심을 보인다.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보게 된 '한글용사 아이야'를 아이가 너무 좋아해서 시댁에 가면 그걸 두 편 연달아 보여준다. 그러면 30분 정도 보게 된다. 그리고 저녁 때나 이럴 때 아이가 심심해 할 때면 티비로 유튜브를 켜서 '앨리스 발레'를 검색하여 영상을 틀어준다. 문화센터에서 앨리스 발레를 배운 적이 있기 때문에 영상에 앨리스 발레가 나오면 그걸 보면서 동작을 따라한다. 그렇게 또 30분 정도 영상을 시청한다.
시골에 있는 친정에 가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아빠는 태블릿으로 온갖 정치 유튜브를 섭렵하여 보는 것이 취미인데, 우리가 아이를 데려가면 태블릿을 틀어서 아이가 좋아하는 뽀로로, 베베핀, 티니핑 같은 영상을 보여주신다. 그러면 거기서 아이가 30분 넘게 외할아버지 옆에 앉아서 태블릿으로 영상을 시청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것에 대해 심각한 제한을 두었는데, 친정 엄마 말씀이 시골 외갓집에 왔는데 외할아버지가 이런 거 보여주는 재미라도 있어야지 며칠 잠깐 있다 가는 동안 너무 까다롭게 굴지 말라고 하셨다. 남편은 장인어른이라서 또 막 나서서 막지는 못하고, 나도 생각해보니 외갓집에 와 봤자 몇 달에 한 번 와서 3일 정도 있다 가는 게 전부인데 너무 야박하게 굴지 말자 싶어서 그냥 놔두기로 했다. 덕분에 우리 아이는 외갓집에서 최애가 외할아버지가 되었고, 자주 보지 않는 무뚝뚝한 외할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자고 일어나면 외할아버지부터 찾는 아이가 되었다. 그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집에서는 그런 별도의 미디어 노출은 전혀 하지 않는다.
극단적으로 막기보다는 아이가 스스로 통제할 능력을 길러주어야 할 듯
미디어 노출을 전혀 하지 않은 아이의 경우, 나중에 좀 커서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라든가 이런 식으로 뒤늦게 유튜브 같은 걸 보기 시작하면 그 때는 다 커서 눈 돌아가도 막을 수도 없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어차피 언젠가 유튜브, 스마트폰, 영상의 세계를 알게 될텐데 친구들끼리 제한없이 마구잡이로 처음 접하기 보다는, 그런 매체에 대한 경험을 부모와 함께 시작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고민하면 할수록 더 들었다.
사실 유튜브, 스마트폰 이런 건 나이 40대 중반인 나도 통제가 안 되고, 중독되고, 끊어야지 결심하면서도 매일 몇 시간씩 밤 12시를 넘기면서 보게 되는데, 아직 어린 아이가 그런 걸 자기 혼자 통제하고 절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막을 수 없다면 부모가 어떻게든 도와주어서 어린 나이부터 혼자 그걸 끊는 걸, 그게 안 되더라도 그래도 매일 노력해서 아이가 스스로 통제하도록 훈련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그렇게 해도 잘 안 될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영상이나 스마트폰을 보면서 '이걸 계속 보는 건 나쁜 것이다'라는 생각을 아이가 무의식 중에 할 수만 있게 해도, 아이가 아무 생각없이 멍하게 영상에 빠져서 보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영상은 길게 보는 게 아니야, 오래 보는 건 아주 나쁜 거야' 이렇게 계속 주입을 하고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엄마인 나다. 내가 핸드폰을 오래 보는 모습을 아이에게 안 보여주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어서 매일 괴롭지만 또 끊어내지 못하고 있다. 고작 이렇게 글로 적으면서 또 한 번 다짐하는 정도이다. 언제쯤 나는 미디어 금지에 성공할 수 있을까..
그래도 미디어노출을 최대한 늦춘 건 잘한 일인 듯
우리 아이는 뽀로로, 타요, 로보카폴리의 덕질 과정을 일반적인 아이들과 똑같이 다 거쳐왔다. 지금 우리 아이의 최애는 로보카폴리이다. 신기한 게 캐릭터들마다 다 때가 있는 것 같다. 아주 어릴 때부터 두 돌 넘을 때까지는 무조건 뽀로로와 그 친구들이 최고였고, 타요나 폴리는 장난감이나 책을 보여주어도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타요에 잠시 빠졌다가, 지금은 로보카폴리로 갈아타서 엄청난 덕질 중이다. 영상을 보여준 적이 없는데도 이 모든 캐릭터들의 덕질이 가능했던 이유는 영유아 도서관 덕분이다. 나는 아이가 두 돌이 되기 전부터 영유아 도서관에 데리고 다녔는데, 그 곳에서 뽀로로, 타요, 폴리 책들을 우연히 발견하고 아이에게 보여주었다. 그렇게 보여주면서 음원 사이트에서 관련 동요도 찾아서 들려주고, 또 관련 캐릭터 장난감도 사주고 했더니 아이가 책에 나오는 내용과 연결지어서 역할놀이도 하며 엄청 재미있게 잘 논다.
아이가 너무 폴리를 좋아하길래 얼마 전에 할머니댁에 갔을 때 티비로 한 편을 보여줘 봤다. 그런데 한 번 보여주고 나서, 아직은 안 보여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한글용사 때와는 반응이 아예 달랐다. 한글 용사는 두 편 정도 보여주고 나서 '이제 끄자'고 하면 어느 정도 수긍을 했는데, 폴리는 더 보겠다고 난리가 나서 티비를 끄는데 애를 먹었다. 솔직히 영상을 틀어서 보여주면, 보여주는 동안 아이가 영상에 빠져 있기 때문에 부모인 우리는 너무 편하고 그 시간 동안 평화롭고 여유를 가질 수 있어서 너무 유혹적이긴 하다. 하지만, 이번에 진짜 좋아하는 캐릭터를 영상으로 보여주니, 아직은 스스로 통제하는 것은 좀 어려워보였다. 초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아주 서서히 조금씩 연습해 볼 작정이다.
다행히, 폴리 영상에 대한 건 며칠이 지나니 잊었는지 지금은 그렇게 떼를 쓰진 않고 있다. 그래도 아직은 책만으로도 재미있어 하는 아이를 보면서, 아이에게 영상 노출을 최대한 늦게 한 것이 잘한 것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영상을 매일 조금씩 보면서도 알아서 그만 보고, 책도 좋아하고, 이런 유니콘 같은 아이가 어딘가에는 있겠지만..ㅋ 우리 아이가 그렇게 될지, 아니면 미디어에 중독될지 알 수가 없다. 얼마전에 어린이집 하원 시간에 대기하면서 다른 아이들의 엄마들이 유튜브 쇼츠 때문에 아이들과 실랑이 하느라 매일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걸 들으면서 아직은 그런 걸 모르게 한 것이 그래도 잘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동시에 나중에 쇼츠를 접하고 뒤늦게 허우적거려 못 빠져나오지 않도록 적절한 시기에 조금씩 가르쳐주기도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미디어노출 관련 근황은 정기적으로 글을 올리며 정리할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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